오달수 근황

이슈 2018. 3. 31. 13:09

오달수 근황





" 한달째 칩거중 오달수, 부산에서 만났다."



△ A씨를 만난 과정을 알려주십시오.


8~90년대, 당시 가마골 극단은 1년에 2번씩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단원을 모집했습니다.

제가 A씨를 만나게 된 것도 그 일환이었죠.

그 후에는 2주 정도 교육 지도를 받고, 이어서 '너 배우, 나 연출' 이런 식으로도 직접 무대 연출해보고

또 배우로 서보기도 하는... 소위 동아리 또는 동호회 정도의 차원이었던 것이죠.

당시만 해도 실력파 배우 양성 및 스타 등용문은 전혀 아니었던 셈입니다.

공연은 가마골 소극장에서 했는데, 관객이 10명이 넘으면 오늘은 ‘많이 보러왔다’고 말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89년도, 그러니까 21살 무렵에 잡무도 보고, 그림도 그려주는 등의 일을 하면서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A씨는 (나중에 주변을 통해 기억해보니) 14기였고, 저와 (문제가 된) ‘쓰레기들’에 함께 작업한 것은

1993년 제가 25살, A씨가 극단에 들어온지 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 입니다.

저는 기수에 맞추어 들어온것이 아니지만, 선배들께서 ‘너도 기수 개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8기 정도의 기수를 받은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A씨의 3년정도 선배인 셈이었죠.

저 역시 4~5년차 정도되는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배우였습니다.

당시대중적인 제 이름값은 ‘0’ 이었고

제가 A씨에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보장해준다’라는 개념자체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 연인감정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성분이 특정되는 걸 원치 않기에 세밀한 상황설명은 배제하겠습니다.
93년 5월 ‘쓰레기들’ 공연을 했습니다. ‘쓰레기들’은 제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연출’이라하면 대단한 권력이라고 상상하실줄 모르겠으나, 실상은 ‘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었습니다.
‘달수 니 연출 한번 연출 해볼래?’ 하길래, 연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예 한번 해볼게요’ 라고 말하며 맡게된 수준이었죠.
A씨는 XXX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저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요.
(오달수는 A씨가 맡은 보직을 기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즉 배우를 맡은 단원들은 각자 직장에서 퇴근후 모여서 몇시간 가량 연습을 하고는 집으로 갔지만
A씨와 저는 (연출부였기에)남아서 회의도 하고, 수정 보완과 같은 작업도 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공연은 주중 1번, 주말 2번. 2개월 가량 지속됐으며 93년 5월에 첫 공연 7월에 재공연을 했고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A씨와 소위 ‘썸’을 타는 정도의 관계였다고 기억하며
젊은 남녀가 좋은 감정을 계기로 관계를 맺게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엄지영씨와의 만남은?


처음 만난 시점이나, 만나게 된 계기가 (엄지영의 말처럼) 극단 간 ‘조인 공연’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 기억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아닙니다.

저는 2001년 이혼한 상황이었고, 2003년 당시 저는 35세, 엄지영씨도 약 30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엄지영씨가 방송에 출연하신 날, 저는 엄지영님의 말씀을 듣고

이미 성숙한 두 남녀간에 모텔에서 벌어진 일들이

제가 아는 단어, ‘성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따져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반박하고 픈 마음도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이후에는 그 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지난 기억에 대한 깊은 사죄를 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2~30대의 오달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제 나이가 딱 지천명, 50살이 되었습니다. 20대와 30대는 물론 성인이었지만,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제가 벌써 철이들어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부처님’이 되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실수와 어리석은 짓, 경솔한 행동을 했었고, 반성하고 돌이켜 보며 이제 50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20대는 사실 지금보다 더 겁많고 부끄러움 많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 여성을 억지로 끌고가 그가 소리를 지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성폭행을 하는 그런 (용기아닌) 용기, 무식함은 지금도, 그때도 없습니다.

A씨를 만난다면, 그것만큼은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성폭행이 아니었다.’ 라는 것을 말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미투’가 있기 전가지 주옥같은 작품들이 줄을 이어 대기중이었고, 기획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가 있고, 제작자가 있고, 투자·배급사가 있습니다.

이번 일로 저 하나가 무너지는 것은 괜찮습니다만은

(출연이 예정돼 있던,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의) 죄없는 스태프들, 제작사, 투자·배급사

또한 다른 배우들까지 피해를 보는것은 너무나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제가 아는 제작사 분들은 그저 영화 한편 잘 만들어보겠다고

‘모든 걸’ 쏟아넣는 분들인데, 제가 민폐를 끼쳐 자칫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위험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선량한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