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노예생활을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

함께 자랐던 두남매. 그중 남동생에게는 지적장애가 있었음 

 

동생이 22살이 되던 1993년 어느날 엄마와 같이 집에가려고 버스를 타러갔던 남동생 

 

그러나 날이 저물어도 둘은 집에오질않았음 

 

그날 그대로 사라진 엄마와 아들 

 

엄마도 남동생과같은 지적장애였음 

 

아버지와 누나는 서둘러 실종신고를 하였지만

결국 몇년지나서 두사람 다 실종선고를 받게되었음.

그동안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누나만 남아 남동생과 엄마를 찾고있었음 

25년이 지났음 

 

그러다가 한달전 다시한번 유전자를 등록하고 경찰에 실종 접수를 했는데 놀랍게도 동생을 찾게된것임  

 

믿기지않았다는 누나 

 

발견당시 남동생의 모습. 전남 고흥의 한 농가에서 일을하던중이었음 

 

온몸에 먼지가 묻어있었음 

 

몸에보이는 여러 폭행흔적과 상처들 

 

의사들은 폭행의 흔적이 맞다고함.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할수없지만 맞은상처임이 확실하다는 의사들 

 

남동생의 이름은 박영준 

 

그러나 호적에는 한성수라는 이름으로 되어있음 

 

15년간 농가의 창고에서 생활해왔다는 박영준씨 

 

그가 살던 창고 

 

이농가에서 15년을 일한 박영준씨 

 

이농가의 주인은 지금 박영준씨 폭행혐의로 교도소에 가있음.

그의 아내만 남은상황 

 

우리는 없는 호적도 만들어줬고 자식같이 돌봤다고 말하는 농장주의 아내 

 

실종선고로 호적이 없었기때문에 호적을 새로만들어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연금을 받을수있음 

 

그러나 그렇게 장애인으로 등록해서 받은 장애연금도 농장주가 받아 다써버림 

 

15년간 돈도 한푼 안주고 노예처럼 일시킨 농장주 가족 

 

가끔 말안들을때는 쇠파이프로 몇대 때림 

 

온몸에 난 상처가 그걸 증명해주지만 아니라고 발뺌하는 농장주의 아내 

 

어디에서 영준씨를 데려왔냐고하니까 친정엄마가 일꾼으로 쓰라고 데려왔다는 농장주의 아내

영준씨를 데려온 그곳은 바로 

 

염전노예로 유명한 바로 "그 동네" 

 

그 동네에 가자 영준씨에게 아는척하는 동네주민들 

 

영준씨는 이곳에와서 첫번째로 바닷일을 하면서 살았음

물론 돈은 못받았음

 

돈을 주고 사람을 사고팔던 사람들 

 

주민들도 대부분 이사실을 알고있었지만 원한을 살까봐 누구하나 신고하는이가 없었음 

 

그렇게 두집안에서 25년간 일했던 영준씨 

 

하루아침에 아내와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애타게 둘을 찾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심